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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 트젠

퇴사 후 생존 재테크 2022. 7. 4.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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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와 각종 방송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유튜브 구독자 68만명을 보유한 트렌스젠더 풍자의 일대기가 향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언제나 유쾌하고 화려한 입담으로 자신을 당당하게 표현할 줄로만 알았던 풍자의 외로움과 괴로움이 담긴 과거사를 접할 수 있었던 방송이 있었습니다. 바로 지난 7월 1일에 방영한 채널A의  '오은영의 금쪽상담소' 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풍자의 웃는 얼굴이 눈에 보인다.
트렌스젠더 풍자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풍자 프로필

윤태웅(尹太雄) → 윤보미(尹普美)

본관은 파평 윤씨

출생은 1988년 1월 22일 (34세)

거주지는 인천광역시 휘장 인천광역시 중구(인천광역시) CI 중구 영종도

국적은 대한민국

신체는 172cm, 80kg 정도 된다고 합니다. 발 사이즈는 260mm에 혈액형은 A형.

가족은 아버지, 남동생, 여동생

반려묘 뽀자(먼치킨 코리안 숏헤어 믹스)

반려견 곰순이(크림 포메라니안), 빼로(블랙 래브라도 리트리버)

병역은 면제

MBTI는 ENTJ

 

2019년부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썰의 유튜브 영상들이 페이스북에서 큰 관심을 받게 되었고, 유튜브 구독자가 말 그대로 떡상하기 시작했습니다. 풍자 특유의 재치있는 입담과 부담스럽지 않은 방송 덕분에 트랜스젠더라는 사회적 시선을 이겨내고 대중적인 유튜버로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풍자의 이야기

풍자는 하루에 2시간씩 자면서 자신이 가난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과거에 너무나 가난해서 굶는게 두려웠던 자신으로 되돌아가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풍자는 현재 일을 너무나 많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

풍자의 일상을 정리한 그래픽이 보인다.
하루에 2시간씩만 수면을 취하는 풍자의 일정이 정리된 표가 눈에 보인다.

 

죽지는 않는데 죽기 전까지 아프다는 인공관절 수술을 8시간동안 한 다음에 바로 방송을 하러 간 풍자

이렇게 풍자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성전환 수술을 하면서도 자신은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공관절 수술을 하면서도 계속 일 생각밖에 없다고 합니다. 다리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결국 일에 치여서 살면서 치료를 미루다가 다리가 괴사되는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풍자는 일을 안하면 마음이 불안한 워커홀릭 증상을 갖고 있다고 오은영 박사님께서 진단했습니다. 

워커홀릭 진단표
풍자에게 제시된 워커홀릭 평가표입니다.

1일 방송된 채널 A 예능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트랜스젠더 유튜버인 방송인 풍자가 출연해 지금껏 방송에서 하지 못했던 고민을 전했습니다. 이날 풍자가 워커홀릭 고민을 전한 가운데, 오은영은 가족에게 성 정체성에 대한 커밍아웃을 어떻게 했는지 물었습니다. 풍자는 “커밍아웃을 세 번 했다”며 첫번째는 아웃팅처럼 본의아니게 주변인을 통해 알게 됐다고. 풍자는 “당시 아버지가 웃으면서 넘어가셔, 그저 반항으로 보셨다”며 “두번 째 때는 아버지가 펑펑 우셨다”고 했습니다.

 

풍자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 어머니 부재로 어머니 역할을 하다보니 아버지는 저의 성 정체성을 병으로 인식하셨다”며 “나중에 세 번째로 얘기했을 땐 심각성을 인지하셨다, 아버지랑 칼을 두고 대치를 했다”고 말해 모두를 충격받게 했습니다.

 

풍자는 “성전환 수술 후 아버지를 찾아갔고, 아버지는 나를 죽어도 이해 못하겠다고 했다”며 커밍아웃을 완강히 부정했다며 “얘기도 중, 계속 너의 뜻(여자로 살겠다는)을 굽히지 않을 거라면 이 칼로 나를 찌르고 가라고 말씀 하셨다”며 6시간 이상 긴 시간동안 아버지와 칼을 앞에 두고 대화를 했다고 했습니다.

 

풍자는 “아빠가 원한다면 평생 남자를 연기하며 살 수 있다, 아버지를 위해 아들로 살 순 있지만 그건 아빠를 위한 삶, 내 인생은 누가 살아주냐며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도 결국 여자의 풍자를 받아들이지 못 하셨다”며 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집을 도망 나왔다고 했습니다. 풍자는 “그때가 19~20살 때, 그 후로 10년간 연락이 끊겼다”며 어렵게 가족 얘기를 꺼냈습니다.

 

풍자는 “사실 주민번호는 아직 바꾸지 못해, 법적으론 남성으로 올라가 있다 또 한 번 아버지와 갈등이 생길까 두렵더라”고 말했습니다. 다행히 현재는 아버지와 재회했다는 풍자. 그는 “어느 날 뜬금없이 전화해 아버지가 통화 내내 우셨다 된장찌개에 밥 해줄테니 집으로 오라는 한 마디 하셨다”며 “그 이후로 온 가족이 10년 만에 만났는데 서로 가족을 못 알아봤다, 아버지도 안 본 사이 부쩍 나이가 드셨더라, 막내도 성인이 되어 있었다”고 떠올렸습니다. 풍자는 “당시 어색했지만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풍자는 “막내가 3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 할머니가 삼 남매를 돌봐주셨는데 1년 만에 돌아가셨다”며 하필 아버지가 지방으로 일을 다닌 탓에 어린 삼 남매끼리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풍자는 “애들 씻기고 학교보내고 포대기 싸서 애들 업고 다녔다”며 가장이자 엄마로 살아야했던 10대를 떠올렸습니다.

 

심지어 아버지는 일 때문에 6개월~1년에 한 번씩 집에 올 수 있을 정도라고. 생활비도 한 달에 3만원을 받아 썼다고 했습니다.풍자는 “기름 보일러를 쓰던 때, 당시 기름값을 낼 수 없어 애들을 안고 잤다”며 “동생들 알림장 가져오면 이웃집 가서 준비물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해 먹먹하게 했습니다. 식사에 대해 묻자 풍자는 “식사를 못해 막내는 영양실조가 왔다, 의식주가 전혀 해결되지 않던 상황”이라며 “동네 어른들이 식사를 제공해줘도 곰팡이가 있거나 상한 음식을 준 사람도 있었다”고 해 충격을 안겼습니다.

 

풍자는 “부모없는 아이라고 놀림받은 동생들 얘기 들으면 무너졌다, 난 다 괜찮은데 왜 내 동생들이 이런 소리 들어야하지? 매일 저만 가난하게 해주세요 기도했다”며 “동생들은 가난하지 않게 해달라는 생각을 매일 했다”고 말해 모두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어린 탓에 할 수 있던 일이 제한됐던 상황. 보호가 필요할 나이에 동생들을 보호해야했던 풍자였습니다. 오은영은 “부모의 마음, ‘마더링’이란 역할을 했다”며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 누구를 원망하기도 삶의 끈을 놓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풍자는 “그때 감정은 설명이 안 된다 , 어떻게 살았지? 싶다”며 “가출해서 모든 걸 다 내려놓으려 하다가도 제가 없으면 동생들에게 방어막이 없을 것 같아 버텼다”고 했습니다.

 

풍자는 “어느 날 남동생이, ‘네가 어른이란 이유로 혼자 참고 있는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너는 내 엄마고 아빠’라는 글을 써줬다”며 처음 받아본 동생의 진심어린 편지에 눈물, 풍자는 “내가 동생들을 헛되이 키운게 아니었구나 느꼈다, 어릴 때 힘든 것이 남동생의 편지 하나로 다 끝났다”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풍자는 “집이 사기를 당해, 충격으로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셔서 돌아가셨다”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풍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더이상 해드릴 게 없다고 하더라. 병원에서도 손 쓸 수 없어 집에서 그냥 가족과 시간을 보내라고 했었습니다. 당시 병원에서 피부로 옮을 수 있다고 해서 동생들은 교회 목사님께 맡겼고, 홀로 어머니를 간호를 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오은영 박사는 "혹시 제초제를 드셨냐"라고 조심스럽게 물었고 풍자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이에 오은영은 안타까워하며 "제초제는 그걸 마시면 결과적으로는 폐에 문제가 생겨서 호흡 곤란으로 돌아가시게 됩니다. 대체로 농약 마시면 응급실에 가면 위 세척을 하는데 제초제는 워낙 독해서 토사물로 나와도 그게 다른 사람에게 흡수가 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의 사고를 홀로 감당했다는 풍자. 그는 “제가 임종까지 다 봤다, 방 한칸에 문을 걸어 잠그고 엄마랑 둘이 있었다”며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일주일간을 잘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풍자는 “혹시 제가 자는 사이 어떻게 되실까봐 자본 적이 없다”며 “제가 잠을 잤을 때 어머니가 농약을 드셨던 것, 어머니 빈소에 앉았는데 제가 왜 하필 그때 잠을 잔 걸까, 제가 만약 잠들지 않았더라면 뺏을 수 있었을 텐데”라며 본인 탓이라 자책했습니다. 죄책감에 편하게 잠들지도 쉬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진솔함이 느껴졌던 풍자의 이야기

항상 풍자라는 캐릭터는 대중에게 인식되기로 당당하고 강한 느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방송으로 풍자라는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어려운 과거사를 풀어놓은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멋집니다. 앞으로 더욱 멋진 활동을 기대하겠습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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